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3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 (문단 편집) === 정부총통 선거 === 개헌파와 호헌파의 싸움이 고조되자 장제스는 슬슬 연임 의사를 비추며 임시 규정을 고쳐 연임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호헌파와 개헌파는 임시 규정의 개정이 개헌이냐 아니냐의 해석을 두고 싸우게 되었다. 1960년 2월 17일 중국 국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을 수정하여 국가의 영도 중심을 공고히 하자는 안건>을 통과시켰고 2월 20일, 1기 3차 국민대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3월 11일, 임시조관의 규정을 근거로 동원감란시기 총통과 부총통은 연임할 수 있으며 그 기간 동안 헌법 47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결의하였다. 장제스는 이 결의에 대해 한번 예의상 사양하였으나 국민당은 국가의 안위와 반공수복의 대업을 실현시키기 위해 장제스가 연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장제스의 출마를 호소하였고 장제스는 이를 못이기는 척 수락하였다. 3월 12일, 중국 국민당 8기 중앙위원회는 임시 전체대표대회를 소집하여 장제스와 천청을 각각 총통과 부총통 후보로 지명하였다. 이에 [[중국 청년당]]과 [[중국 민주사회당]]은 분노하여 더 이상 국민당의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이유로 총통과 부총통 후보 지명을 거부했다. 이에 3월 21일, 국민당만 후보를 출마시킨 상태에서 정부총통 선거가 실시되었다. 1509명의 대표가 출석한 가운데 장제스는 1481표를 획득하여 3대 총통에 당선되었으며 3월 22일, 천청은 1505명이 출석한 가운데 1381표를 얻어 3대 부총통에 당선되었다. 3월 25일, 장제스는 국민대회 페막식에서 차기 6년의 임기 안에 반공대업을 완수할 것이며 삼민주의 신중국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리고 대륙동포의 합법적 권익을 보장하며 대륙의 풍족한 경제생활을보장한다고 발표했다. 1960년 5월 20일, 장제스와 천청은 총통과 부총통에 취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